[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 치매, 남의 일 아니다!

▲사진=골프한국

의학계가 중풍 치료의 대안으로 골프를 본격 연구해온 것은 꽤 오래됐다.

한 대학에선 LPGA투어 선수를 대상으로 머리에 전극을 달고 퍼트를 할 때 뇌의 활동을 측정, 퍼트할 때 뇌의 활동이 평상시보다 월등히 왕성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는 곧 골프가 치매나 중풍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한 의과대학 교수인 아미르 소아스 박사는 정신적 육체적 운동이 뇌를 노화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면서 그중에서도 ‘읽고 읽고 또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서, 글자 맞추기, 퀴즈, 체스 등과 함께 골프를 뇌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적절한 운동으로 꼽았다. 홀마다 적절한 공격 루트를 찾고, 그린 위에서 홀컵에 이르는 길을 읽어내는 것은 바로 독서와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골프가 독서보다 한층 높은 수준의 창의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느 여가활동보다 뇌의 활동을 왕성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TV를 보고 있을 때는 뇌가 활동하지 않는 중립상태에 들어간다며 가능한 한 TV 볼 시간이 있으면 골프장에 나가라고 권한다.

의학사전이나 백과사전에 정의된 치매(癡?)는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던 사람이 뇌 기능 장애로 지적 능력을 잃거나 퇴화하는 경우를 말한다. 치매는 기억의 장애, 실어증, 실행증(失行症), 실인증(失認症), 집행기능 장애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단순한 기억력 감퇴로 시작되어 다른 분야의 인지능력 퇴행으로 진행되는 치매는 일정한 수명을 살다 죽어야 하는 인간으로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피할 방법이 없다.

건강한 신체로 초원을 거닐며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치매와 거리가 멀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골프장 곳곳에서 ‘골프치매’ 현상을 목격하고 스스로 그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의학적으로는 건망증과 치매가 다르다고 하지만 골프에선 건망증과 치매의 경계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식사를 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만 무엇을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를 잊어버리면 건망증이고, 식사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면 치매라고 하는데 60대를 넘어선 골퍼들에겐 이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늘집에 모자나 퍼터를 놓고 나온다거나 화장실에 들어갈 때 남녀 구분을 깜빡 잊는다거나, 두 개의 클럽을 들고 갔다가 하나를 놓고 오거나, 티샷 순서를 잊거나 한 홀의 타수 또는 퍼트 수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운전해온 자동차번호나 라커 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는 치매라고 볼 수 없다. 게임에 집중하다 보니 생길 수 없는 가벼운 건망증에 가깝다.

회원인데도 비회원란에 이름을 쓰거나, 주중에 운동하면서 “주말 날씨 참 좋다”고 말하거나, 사워룸에서 ‘두발용’이라고 쓰인 것을 두 발에 바르거나 헤어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욕탕에서 나온 뒤 다른 사람 팬티를 입고 나온다면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다.
50대를 넘기면서 나타나는 이런 증상들은 그래도 다음에 열거하는 증상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홀 아웃 한 뒤 깃대를 들고 다음 홀로 이동하거나, 손에 공을 들고 캐디에게 내 공을 달라고 하거나, 벙커샷을 한 뒤 골프채 대신 고무래를 들고 나오거나, 그린에서 마크를 한 뒤 다른 사람의 퍼팅이 끝나자 자신이 퍼트할 차례임을 잊거나, 아예 자신이 퍼팅을 마친 것으로 착각해 그린을 떠나거나, 목욕탕 안에서 함께 라운드한 동반자를 보고 “참 오랜만이네. 언제 한번 라운드해야지?”하고 인사할 정도면 치매에 가까이 다가섰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골퍼에게 보다 치명적인 것은 스윙 메커니즘이나 어드레스, 코스 분석 및 그린 읽기 등 라운드와 직접 관련된 데서 생기는 치매현상이다.

골프라는 운동 자체가 숙지해야 할 지침이나 원칙, 주의사항, 정보가 워낙 많고 집중해야 할 순간이 이어지기 때문에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모두 끄집어내 실천하기가 여간 쉽지 않은데 여기에 치매증상까지 겹친다면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기 어렵다.

캐디로부터 왼쪽이 OB지역이니 페어웨이 오른쪽을 겨냥하라는 설명을 듣고도 막상 티잉 그라운드에선 그린과 가까워 보이는 페어웨이 왼쪽을 보고 선다거나, 그린에서 볼과 홀컵 사이의 거리를 발걸음으로 다 재어놓고도 막상 퍼트할 땐 까맣게 잊거나, 캐디에게 물어 오르막 내리막을 확인하고도 막상 퍼트할 땐 혼동한다면 좋은 스코어를 기대할 수 없다.

치매는 아니라 해도 잘 하든 퍼팅이 번번이 빗나가고 에이밍을 전혀 엉뚱한 곳으로 한다든지 평소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 자주 일어나면 나의 인지능력에 이상이 생겼다는 증거다.

휴대폰에 문자를 입력할 때 오자가 자주 발생한다면 시력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다. 좌우의 시력에 차이가 심하거나 정면에서 볼 때와 측면에서 볼 때 오차가 심해도 퍼팅과 에이밍에 영향을 미친다.

치매를 방지하기 위해 골프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골프 치매에 빠져든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사실인 걸 어쩌랴.

골프 치매로부터 탈출하는 비법은 많은 연습과 고도의 집중훈련 외엔 왕도가 없다. 의식 없이 숨을 쉬고 발걸음을 떼어놓듯 습관적 기계적으로 샷을 날릴 수 있을 정도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한 샷 한 샷에 집중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하지 않는 한 결코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골프가 치매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는 것도 골프를 잘 하기 위해 부단히 치매의 내습(來襲)을 경계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