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골프칼럼] ‘집념의 한 송이 꽃’ 피워낸 안송이

▲2019년 KLPGA 투어 ADT캡스 챔피언십에 출전한 안송이 프로. 사진=골프한국

긴 기다림과 인고의 세월을 보낸 선수가 우승했을 때 팬들은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숱한 좌절과 시련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기쁨을 대리 만족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끝난 KLPGA 시즌 최종전 ADT캡스 대회에서 1타차의 짜릿한 생애 첫 우승을 일궈낸 안송이(29) 선수의 울먹인 인터뷰는 그의 팬 여부를 떠나 골프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안송이는 수차례 우승 문턱에까지 갔다가 꼭 최종라운드에서 흔들려 우승을 놓친 탓에 그를 아끼는 팬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런 까닭에 KLPGA 투어에서 가장 긴 237번째 대회 만에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자 더 감격스러워 했다.

KLPGA 투어를 뛴 선수 중에는 우승 한 번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선수가 더 많은 현실에서 그의 오랜 기다림 끝의 우승이 갖는 의미는 남다른 데가 있다.

실력이 부족했다면 시드 유지가 불가능하였을 텐데 그는 오랜 시간을 버티며 눈물겨운 고통 속에서 집념과 피나는 노력으로 이겨내고 마침내 한 송이 꽃을 피워냈다. 또한 많은 이에게 그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면 언젠가는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주었다.

10년 동안 준우승 3회, 톱5 15회, 톱 10에 38회나 들 만큼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정상을 밟지 못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 본인 스스로 밝혔듯이 심리적 불안감의 트라우마가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여러 차례 2라운드나 3라운드까지 선두권으로 잘 치다가도 최종라운드 후반만 되면 어이없는 티샷 OB가 나거나 1미터 내외의 짧은 퍼트를 놓쳐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 최종라운드 후반에 오는 심리적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근육이 뭉치고 울렁증이 생긴 탓에 제 스윙을 못하거나 퍼팅 스트로크가 제대로 안됐다고 밝혔다.

골프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실력이 월등한 선수가 우승 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우승하거나 독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골프 역사 초창기 저변 확대가 되어 있지 않은 1940년대에 바이런 넬슨이 한 해 30개 대회에서 18번을 우승한 일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1960대 이후에는 통산 82승의 최다승 타이기록 보유자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전성기인 2000년에 49개 대회 중 9번으로, 우승 확률 18.4%였다.

그것이 바로 골프의 묘미다. 언더독 선수도 언제든지 우승할 수 있고 실력이 뛰어난 선수도 컨디션에 따라 미끄러지는 것이 인생사와 유사하다.

시즌 최종전은 상금순위 60위 이내 들어 시드를 확보하고자 하는 선수들과 첫 우승을 노리는 선수들로 인해 경쟁이 더욱 치열하고 생애 첫 우승자가 많이 배출되기도 한다.

안송이는 오래 꿈꿔왔던 첫 우승을 향해 코스 난도가 비교적 높기로 정평이 난 천안 우정힐스CC에서 첫날 날카로운 샷을 뽐내며 보기 없이 5언더파를 쳐 단독 선두로 상큼하게 출발했다.

2라운드에는 흔들렸지만 3타를 줄이며 루키 이가영(20)에 1타 앞선 채 최종 라운드를 맞이했다.

최종라운드 챔피언 조에는 3타 뒤진 우승 4회의 노련한 이소영(22), 1타차 루키 이가영이 안송이와 다투었다. 이소영은 첫 홀부터 이글을 잡아내 단숨에 1타차로 좁히고, 이가영은 2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 안송이를 심리적으로 압박하였다.

그러나 안송이는 전반부에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지키면서 가자는 듯 방어적인 플레이를 펼치다 7번 홀에서 첫 보기를 기록, 공동 선두를 허용하였다. 이소영은 전반 3홀 연속 보기를 하면서 우승권에서 멀어져 이후 7번 홀부터는 사실상 안송이와 이가영의 2파전이었다.

9번 홀에서 두 선수 모두 버디를 잡아내는 승부욕을 보이자 이때부터 우승에 대한 긴장감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후반 첫 10번 홀에서 이가영이 보기를 범했지만 이후 두 홀 연속 버디를 잡아 만만찮은 실력을 드러냈다. 이가영은 신인으로서 한참 선배인 선수에게 져도 잃을 것 없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플레이해서인지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텼다.

13번 홀까지 팽팽한 공동 선두를 유지해가다 14번 홀에서 안송이의 징크스 같은 트라우마가 나타났다. 1미터 남짓의 짧은 퍼트를 그만 흘려 보내고 말았다. 1타차 2위. 과거 이와 같은 실수로 몇 번의 발목이 잡혔던 악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또 이대로 미끄러지는 건가.’

그러나 올해 마지막 대회인데다 20대의 마지막 해에 기어코 우승을 해야겠다는 집념과 우승 후 밝혔듯 갤러리로 온 전인지 선수의 응원에 힘을 얻고 경기에 집중했다.

드디어 운명의 파3, 16번홀. 홀과는 상당히 먼 8미터 정도에 볼이 놓여 버디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침착하게 긴 거리의 퍼팅을 성공시켜 다시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이 장거리 퍼팅의 버디로 안송이는 우승의 불씨를 살렸고, 상대자인 이가영은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 결국 16번 홀 롱퍼팅이 우승을 결정지었다.

이어진 파4, 17번 홀에서는 그토록 평정심을 유지하며 잘 버티던 이가영은 쫓기는 입장이 되어 결국 보기를 범하고 1타차 2위로 내려 앉았다. 핀이 그린 왼쪽에 꽂혀 있어 두 선수 모두 직접 핀을 공략하다 그린을 놓쳤다.

이가영이 먼저 샷을 할 차례인데 특이하게도 웨지 샷을 하지 않고 퍼터로 대응했다. 볼 위치가 그린보다 높거나 프린지 같으면 퍼터 사용이 이해가 되는데 홀에 한참 떨어진 그린보다 아래에 놓여있는데도 퍼터로 굴렸다. 아닌 게 아니라 볼은 프린지에 멈춰서 결국 보기를 하고 만다. 역시 경험 부족에서 오는 샷 선택의 미스라는 생각이 든다.

1타차 선두로 파5 18번홀. 안송이는 좌측 워터해저드를 의식, 티샷이 페어웨이 우측 끝으로 떨어졌고, 이가영은 마음을 비운 듯 가벼운 스윙으로 페어웨이 한가운데 떨어뜨렸다. 안송이의 샷은 두 번째도 우측 러프에 떨어져 세 번째 샷을 홀에 붙이기 어려웠다. 볼은 홀 좌측 그린 끝에 떨어졌다.

반면 이가영의 세 번째 샷한 볼은 홀 3미터에 붙어 충분히 버디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 안송이는 마지막 퍼팅을 성공시키면 우승이라는 기대와 부담으로 어드레스를 한번 풀었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약 6미터 거리의 혼을 실은 퍼팅을 시도. 바로 넣기보다는 최대한 붙여 설령 상대가 버디를 하더라도 연장으로 가겠다는 마음으로 딱 떨어진 거리의 홀컵 20 cm에 붙여 파를 기록, 먼저 홀 아웃했다.

루키 이가영은 이 버디를 성공시키면 연장전에 갈 수 있다는 기대와 압박감으로 긴장을 떨치기 위해 이전 퍼팅 템포보다 조금 급하게 시도하여 결국 공은 홀컵을 비켜갔다.

상대의 퍼팅이 홀컵을 벗어나자 안송이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10년을 기다려온 우승 한을 마침내 풀어냈다. 그동안 우승 문턱까지 갔다 미끄러진 아쉬운 순간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눈물을 쏟아냈다. 어렵고 길었던 꿈이 이루어 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