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골프칼럼] ‘통한의 트리플보기’ 한상희, 그러나 희망의 빛을 품다

▲KLPGA 투어 비씨카드 한경 레이디스컵에서 우승에 도전했다가 단독 7위로 마친 한상희 프로. 사진=골프한국

신들린 듯한 플레이로 2위와 무려 6타차를 리드하던 선수의 3라운드 18번홀 통한의 트리플 보기가 시드전을 전전한 10년 무명 선수의 꿈같은 생애 첫 우승을 날려버렸다.

10년여에 걸친 거듭된 부진으로 수없이 골프를 그만 둘까도 생각하며 수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 선수의 천재일우 기회에서 놓친 우승이기에 그 여운과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인고의 세월을 보낸 프로 선수가 독특한 퍼팅폼으로 주목을 끌며 팬들에게 기쁨과 영감을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쌓여있던 에너지를 이번 대회에 모두 쏟아 붓듯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였지만 한 홀의 실수로 늦은 생애 첫 우승을 놓치자 많은 골프팬들은 아쉬움을 나타내며 안타까움에 연민의 성원을 보내고 있다.

왜 많은 골프팬들은 스윙과 퍼팅 자세가 조금은 불안하고 어색해 보이는 늦깎이 선수의 우승을 기대하며 응원을 보내고, 우승 실패에도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낼까.

보통 20대 후반에 KLPGA 1부 투어 첫 우승을 하지 못하면 대부분 조용히 자취를 감추는 현실에서 늦은 나이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집념과 용기를 높이 평가하고, 갖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마침내 꿈을 이루어내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두 배 이상의 노력과 긴 시간을 요한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고 전진했을 때 비로소 꿈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지난 23일 끝난 KLPGA 투어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 대회에서 무명 돌풍을 일으켜, 이틀 연속 깜짝 선두로 최고 화제를 모으며 7위로 마감한 한상희 선수(29).

2009년 프로 생활을 시작, 6년 동안 2부 투어에 머물다 2014년 처음으로 1부 투어에 올라왔다. 그러나 톱5에 한번 오른 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다음해 다시 2부로 내려갔고, 2016년 다시 올라왔지만 여전히 투어의 높은 벽에 상금랭킹 60위 이내 들지 못하고 3년 동안 시드전을 치러 근근이 1부 투어 생활을 해왔다.

스타 선수들은 결혼 후 30대에도 종종 우승하지만 KLPGA 투어에서 최고령 생애 첫 우승은 2003년 하이트컵 대회에서 데뷔 15년만에 꿈을 이룬 당시 36세의 김순희 프로였다.

이에 비견되는 악조건의 한상희 선수가 10년만에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이틀 연속 선두에 올랐으니 생애 첫 우승이란 천금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운명의 골프 신은 그 영예로운 위업을 쉬이 허락하지 않고 알 수 없는 그림을 위해 다음 기회로 예비하여 둔 듯하다.

골프란 운동이 참 묘한 것이 어제 5언더파를 치다가도 오늘 5오버파를 치는 것이 허다하며 더구나 한순간 삐끗하여 흔들리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4일내내 잘 치기도 힘들다. 우승하기 위해서는 하루 정도는 주춤하더라도 3일은 잘 쳐야 한다.

3라운드 마지막 홀을 깔끔하게 맺지 못하고 찜찜한 뒷맛을 남긴 것은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운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3타차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맞이하여 우승 가능성은 있었지만 전날 마지막 홀에서 받은 심리적 충격으로 ‘언더독’ 선수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다.

재능이 탁월한 강심장의 선수는 위기시 스스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실점을 만회하지만 우승 경험이 없거나 챔피언조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는 한번 흔들리면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라운드 첫 홀에서 액땜을 하듯 보기를 한 후 3번홀(파5)에서 약 6m 거리의 롱퍼트를 성공 시키며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6번 홀까지 4연속 버디로 기세를 올릴 때만해도 꼭 일을 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전반에만 4타를 줄인 후 후반 들어 10번홀(파5)에서 비교적 긴 5m 버디를 추가한 후 15, 18번홀에서는 정교한 아이언 샷으로 홀 1m 근처에 붙여 버디를 잡을 때는 마치 겁 없는 신인 선수 같았다. 2라운드 결과 1타차 선두. 2017년 카이도 오픈에서의 선두 이후 생애 두 번째.

이때부터 언론과 팬들은 “한상희가 누구야” 하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자 선수로는 비교적 큰 키(174)에 퍼팅을 할 때 상체를 숙이지 않고 거의 선 자세로 팔꿈치와 퍼터를 가슴에서 떨어지게 한 채 스트로크 하는, 팬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모습의 선수가 먼 거리 버디 퍼팅을 쑥쑥 집어 넣으며 이날 7언더파를 쳐 단독 선두로 마치자 관심을 갖고 조금씩 우승에 대한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3라운드에서는 1번홀(파5) 버디와 2번홀 보기로 맞바꾼 후 7, 8번홀 연속 버디로 타수를 줄여나갔다. 특히 후반 11, 12번홀, 14, 15번홀에서의 4~5m 되는 중거리 퍼트를 연속으로 집어 넣을 때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신들린 듯 버디를 잡아냈다. 그야말로 본대로 친대로 들어가는 놀라운 상황이었다.

흔히 골프계에서 본대로 친대로 들어가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와도 안 된다는 말이 회자된다. 한 두 번은 몰라도 연속해서 성공하기에는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단순히 행운이 따랐다고 치부할 수 없는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쳐 보였다.

그러나 얄궂은 운명의 신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18번홀(파5)에서 생애 첫 우승을 노리는 선수에게 가혹한 장난을 치고 말았다. 18번홀 티샷이 페어웨이 좌측을 크게 벗어나 나무가 있는 숲속으로 떨어졌다. 그대로 세컨 샷을 하기에는 쉽지 않아 레이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 번째 페어웨이에서 친 샷이 카트 도로에 떨어져 구제 없이 그대로 아이언 샷 한 볼은 얄궂게도 다시 그린 앞 벙커로 떨어지고 말았다. 많은 갤러리의 시선을 받으며 플레이 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한 선수는 이때부터 심리적으로 흔들렸던 것 같다.

다섯 번째 벙커에서의 샷도 홀을 크게 지나쳐 결국 첫 우승의 발목을 잡게 되는 3퍼트 트리플 보기를 범하고 말았다.

3타차 선두로 3라운드 마치고 최종 라운드 앞둔 한 선수로서는 10년을 기다린 첫 우승의 꿈을 이룰 수도 있다는 흥분과 긴장으로 아마도 생애 가장 긴 불면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결국, 전날 마지막 홀에서 남은 마음의 부담과 파이널 라운드 챔피언 조에서의 중압감,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우승은 놓쳤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노력해온 보상을 받으며 값진 경험을 얻었을 것이다. 이제 나도 우승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흔들린 멘탈을 잡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은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그가 얻은 큰 소득이 되리라 본다.

바둑에서 프로 기사들이 대국 후 복기하듯 3, 4라운드 모든 샷과 퍼팅을 복기하여 참고 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파이널 라운드 챔피언 조에서 언더독 선수가 우승하기 위해서는 첫째도 자신감, 둘째도 자신감, 셋째는 침착함이다. 나는 우승 할 수 있다, 나도 챔피언이 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을 걸어야한다.

이번 대회 한 선수의 리커버리율 42%, 3라운드 페어웨이 안착률 23% 가 보여주듯 티샷 정확성과 리커버리율만 조금 보완한다면 충분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소중한 진리를 다시 한번 입증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안겨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