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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을 받아들이는 것도 지혜다

로마 시대 박해받던 그리스도 교도들의 묘지이자 예배 성소인 카타콤(지하동굴묘지)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충격을 준다. 좁은 지하동굴 곳곳에 차곡차곡 쌓인 해골들은 아무 말이 없지만 조용히 펼쳐 보이는 묵시록은 절대자, 믿음, 사랑, 박해 등을 이야기한다.

오래 전에 여기를 구경한 적이 있는데 하얀 팻말에 쓰여 있는 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라틴어인지 영어인지 불분명하지만 뜻은 ‘우리도 한때는 당신처럼 생각했다’는 내용이었다. 풀어보면 ‘해골로 변한 우리도 살아 있을 땐 당신네들처럼 영원히 죽지 않고 살 것으로 믿었고 죽음은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다’라는 뜻일 게다.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골프 역시 퇴행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60을 앞둔 사람조차 자신이 70~80대 노인의 모습으로 변할 것이란 사실을 논리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거부하기 일쑤다.

하물며 골프 전성기를 맞고 있는 40~50대 골퍼들이 후배에게 핸디캡을 받고 언젠가 시니어티로 물러날 것이란 사실을 쉬 인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골프 실력은 그대로 유지돼 체력만 잘 가꾼다면 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아래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에이지 슛’(age shoot)’을 꿈꾸기도 한다. 주위의 골프 고수들은 대부분 이런 꿈을 안고 열심히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다.

골프 스코어를 향상시켜 나가는 과정은 80%의 고통과 20%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같다. 더디게 개선되는 스코어가 골프의 묘미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기대한 스코어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자학의 고통 또한 만만찮다. 골퍼에게 전해지는 느낌의 강도는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훨씬 크고 무겁다.

스코어의 향상이 안겨주는 쾌감은 짜릿하지만 평소 스코어에 미치지 못하고 예전의 스코어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보는 것은 고통이다. 특히 항상 챔피언의 위치를 고수하던 사람이 어느 날 후배에 의해 따라잡히면서 난조에 빠지고 저 멀리 달아나는 후배들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하는 위치에 섰을 때, 그 상황을 수용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대부분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을 끝내 거부하다 더 큰 고통에 빠져 아예 골프채를 버리거나 골프 아니면 자신을 혐오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가장 불행한 골퍼의 길이다.

진정 골프를 즐긴다면, 그리고 눈을 감을 때까지 골프를 즐기겠다면 나이를 먹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듯,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 골프의 퇴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참 골프 스코어가 개선될 때에는 스코어에 집착함으로써 쾌감을 얻지만 일정 기간을 지나면 스코어로부터 자유로움으로써 골프의 새로운 즐거움, 어쩌면 순수한 골프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나이 들어 기량의 퇴행에도 불구하고 골프와 결별을 선언하지 않고 골프를 가까이할 수 있다면 진정한 골퍼 애호가라 할 수 있다. 육체가 허락하는 한 골프의 퇴행을 저지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또한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일 것이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